본문 바로가기
생각의 임상, 시선의 연구

Protocol Violation, 실수일까 위반일까

by ellie‘s 2025. 12. 30.

안녕하세요. 임상시험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엘리입니다.
임상시험 현장에서 ‘Protocol Violation’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긴장합니다. ‘위반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 때문입니다. 뭔가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느낌이 들고, 책임 문제가 바로 떠오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마주하는 Protocol Violation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고의적인 규정 위반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Protocol Violation은 말 그대로 연구계획서, 즉 프로토콜에 명시된 내용에서 벗어난 모든 상황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연구 대상자 선정 기준을 벗어난 등록, 정해진 방문 일정과 다른 시점의 평가, 계획서에 없는 절차의 시행 등이 포함됩니다. 중요한 점은, 이 모든 상황이 반드시나쁜 의도에서 비롯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임상시험은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진행됩니다. 대상자의 건강 상태는 연구 일정에 맞춰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방문 일정이 변경되기도 하고, 임상적으로 필요한 조치가 계획서에 명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런 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프로토콜과 현실 사이에는 작은 틈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 틈이 생겼을 때,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Protocol Violation을 이해하는 핵심입니다.
임상시험에서 중요한 것은벗어났는가보다어떻게 인지하고 관리했는가입니다. 계획서와 다른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하고도 기록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됩니다. 반대로 그 차이를 명확히 인지하고, 기록으로 남기고, 필요한 보고 절차를 거친다면 연구는 여전히 관리 가능한 상태에 놓일 수 있습니다.

국제 기준인 ICH-GCP는 임상시험이 프로토콜에 따라 수행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합니다. 동시에, 프로토콜에서 벗어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현실도 전제로 합니다. 그래서 GCP는 위반 자체보다, 위반 발생 시의 보고와 조치, 재발 방지 계획을 중요하게 다룹니다. 완벽한 현장을 요구하기보다, 설명 가능한 현장을 요구하는 기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국내 「의약품 임상시험 관리기준(KGCP) 역시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KGCP는 프로토콜 일탈이 발생했을 경우, 그 내용과 사유, 대상자 안전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이를 문서로 남기도록 규정합니다. 이 과정이 생략되거나 형식적으로 이루어질 때, Protocol Violation은 단순한일탈을 넘어 관리 부실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Protocol Violation이 문제로 커지는 경우는 대개 두 가지입니다.
첫째, 위반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을 때입니다. 프로토콜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각 절차의 의미를 인식하지 못하면 위반이 발생했는지조차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둘째,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판단으로 넘어갈 때입니다. 이 순간, 작은 일탈은 관리되지 않은 위반으로 남게 됩니다.

Protocol Violation을 단순히 실수로만 바라보는 것도, 무조건 위반으로 낙인찍는 것도 모두 위험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상황이 연구 대상자의 안전과 연구 결과의 신뢰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평가하는 일입니다. 어떤 위반은 연구 결과 해석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어떤 경우는 제한적인 영향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이 차이를 구분하는 것이 관리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임상시험에서는 Protocol Violation을 분류하고 관리합니다. 경미한 일탈인지, 중대한 위반인지, 반복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평가하고, 그에 따른 조치를 결정합니다. 이 과정은 연구자를 처벌하기 위한 절차가 아니라, 연구를 정상 궤도로 되돌리기 위한 과정에 가깝습니다.

Protocol Violation 관리에서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대상자 보호입니다. 위반이 대상자의 안전에 영향을 미쳤는지, 추가적인 위험을 발생시켰는지를 평가하는 일은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합니다. 연구 결과보다 대상자의 안전이 항상 앞서야 한다는 원칙은, 이 지점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현장에서 경험하는 Protocol Violation은 임상시험이 얼마나 현실적인 환경에서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 연구계획서는 이상적인 상황을 전제로 작성되지만, 실제 현장은 늘 변수를 동반합니다. 중요한 것은 변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변수를 인지하고 관리하는 능력입니다.

Protocol Violation은 임상시험의 실패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를 어떻게 다루는지가 연구의 수준을 보여줍니다. 투명하게 기록되고, 적절히 평가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가 이루어진다면 연구는 여전히 신뢰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Protocol Violation은 위기의 신호이자, 관리가 작동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지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Protocol Violation을 실수로만 볼지, 위반으로만 볼지는 그 이후의 대응에 달려 있습니다. 임상시험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일탈 그 자체가 아니라, 일탈을 설명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이 원칙을 이해하는 순간, Protocol Violation이라는 개념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의 언어로 바뀌게 됩니다.

 

관련 법·규정 근거

·        ICH-GCP (Good Clinical Practice)
:
임상시험은 프로토콜에 따라 수행되어야 하며, 일탈 발생 시 보고·평가·조치가 이루어져야 함을 명시

·        「의약품 임상시험 관리기준(KGCP)
:
프로토콜 일탈 및 위반의 기록, 평가, 대상자 안전 영향 분석을 의무화

·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
연구 수행 과정에서 대상자 보호와 연구 절차의 적절성 확보를 연구자의 책임으로 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