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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임상, 시선의 연구

임상시험 속 감정노동: CRA가 겪는 갈등과 대응

by ellie‘s 2025. 6. 25.

안녕하세요, 임상시험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엘리입니다.
CRA라는 직무는 겉보기엔 ‘데이터를 확인하고 리포트를 작성하는 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상은 사람 사이의 조율과 관계 속에서 긴장감이 끊이지 않는 감정노동의 연속입니다.

오늘은 제가 CRA로 일하며 마주했던 갈등과 그에 대한 대응 경험을 토대로, 임상시험 현장에서 CRA가 겪는 감정노동의 유형과 대처법을 현실적으로 정리해 보려 합니다.

1. CRA의 감정노동, 어떤 순간에 발생할까?
CRA의 감정노동은 단순히 바쁜 일정 때문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감정적으로 지치는 순간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 특히 역할과 책임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 발생하곤 해요.

대표적인 상황 예시:
CRC가 책임질 실수를 CRA에게 전가하려 할 때
Sponsor가 데이터 오류에 대해 CRA만을 압박할 때
PI가 의사결정 지연으로 시험 일정이 틀어졌을 때, 책임 소재가 CRA로 돌아올 때
병원 행정팀이 협조를 거부하며 CRA를 외부인으로 대할 때
이럴 때 CRA는 현장을 원만히 유지하기 위해 감정을 억누르며 중간자 역할을 수행하게 되죠.

2. CRA가 가장 많이 겪는 갈등 유형 TOP 3
① CRC와의 실무적 마찰
CRC가 바뀌는 병원에서는 기존 인계 미흡, 업무 이해도 부족 등의 문제로 CRA가 이중삼중으로 일을 처리해야 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예: 모니터링 당일 방문 전 CRC가 SAE를 입력하지 않았고,
Sponsor는 CRA가 왜 이걸 놓쳤냐고 질책함.
CRA는 담당 CRC의 실수를 Sponsor에게 해명하면서도, CRC와의 관계를 깨지 않기 위해 완충 역할을 하게 됩니다.

② Sponsor와의 일정 및 보고 압박
CRA는 병원에서 확인한 데이터를 Sponsor에게 리포트로 전달합니다. 이때 Sponsor가 요구하는 일정이 촉박하거나, 오류에 대해 CRA에게 직접적인 책임을 묻는 경우가 있어요.
예: “왜 Deviation 리포트가 이틀이나 늦게 올라왔나요? CRA가 책임져야죠.”
이럴 때 CRA는 병원과의 사정, 내부 승인 지연 등 전체 맥락을 설명해야 하며, 실질적 책임이 없어도 실무자라는 이유로 부담을 감수해야 합니다.

③ PI 및 병원 내부 의사소통 문제
특히 PI가 CRA에게 소극적일 경우, 중요한 결정이 지연되거나 문서 서명이 늦어지는 일이 많습니다. PI가 바쁜 일정으로 인해 협조가 잘 안 될 때 CRA는 무기력함과 좌절감을 겪게 됩니다.
예: “이건 중요한 것도 아닌데, 왜 서명을 요구하죠?”
“CRA가 다 알아서 해요.”
CRA는 존중받지 못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고, 소속감이 낮아지는 심리적 부담을 겪습니다.


3. CRA가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응 전략
CRA는 감정노동을 ‘없앨 수는 없지만 줄일 수는 있습니다.’
제가 직접 실천해 온 전략들을 공유합니다.
1) 역할의 경계 분명히 하기
CRC와 Sponsor 사이에서 CRA의 책임과 의무 범위를 명확히 정리합니다.
“이건 CRA의 확인사항이 아닙니다. CRC 또는 PI 판단이 필요한 항목입니다.”처럼 객관적인 언어 사용

2) 기록으로 감정 대신하기
감정적 상황이 발생했을 땐 Log, Email, Follow-up Memo 등을 통해 ‘사실 기록’으로 대체합니다.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되, 감정 표현은 절제합니다.

3) Sponsor와의 대화는 데이터 중심으로
질책이나 압박이 들어올 경우, 감정보다 프로세스 중심으로 대응합니다.
예: “이 건은 CRC의 입력 지연이며, CRA는 일정보고서를 통해 2일 전 확인했습니다.”
→ 이렇게 말하면 책임이 분산되고 CRA의 대응이 명확해집니다.

4. 실무 속 한 사례: 감정을 넘어서 신뢰를 쌓은 이야기
예전 한 사이트에서는 SAE가 누락되어 CRA인 제가 Sponsor에게 직접 경고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CRC와 차분히 회의하며 다음부터는 SAE 발생 시 6시간 내 통보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각자의 역할을 정리했죠.
몇 달 후 같은 Sponsor에서 감사가 나왔을 때, 이 사이트는 오히려 모범 사례로 평가받았고, 그 때 CRC가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초반엔 무서웠는데, 지금은 CRA님이 든든해요.”
감정을 눌러서 신뢰를 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던 순간이었습니다.

5. CRA도 보호받아야 한다: 조직 내 지원 시스템
CRA는 종종 고립된 위치에 놓입니다.
Sponsor의 요구와 병원의 기대 사이에서 혼자 버티는 경우가 많죠.
실무에서 필요한 것:
감정노동에 대한 공식적인 심리지원 시스템
갈등 상황에서 CRA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체계
불합리한 요구에 대해 ‘거절할 수 있는 권리’ 부여
CRA가 심리적으로 건강해야 임상시험의 질도 유지될 수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CRA는 ‘감정의 조정자’이자 ‘현장의 조율자’
CRA의 실수는 숫자로 보이지만, CRA의 감정은 숫자로 측정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CRA가 무너지면 시험의 흐름 전체가 흔들리기 때문에, CRA는 감정도 실무처럼 잘 관리해야 하는 역할입니다.
감정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기록’과 ‘소통’으로 조정하는 기술이 필요합니다.